[통영 청년사장] 가업을 잇는 20대 청년 '통영바다뜰' 강동균 실장을 만나다.

-10대 시절 거상을 꿈꾸던 소년
-직장생활 대신 통영 멸치권현망수협 21번 중매인으로 거상의 꿈에 한발짝 다가서다

김지혜 기자 승인 2021.08.09 15:08 의견 0

통영 멸치권현망수협 21번 중매인 '바다뜰' 강동균 실장

[통영 청년사장을 만나다] 두번째 주인공은 가업을 이어 멸치 판매에 뛰어든 '통영바다뜰 강동균 실장'을 만났다. 선한 인상의 강동균 실장은 선한 얼굴만큼이나 이쁜 말 솜씨로 앞으로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전직 간호사 출신이던 그가 아버지와 함께 사업에 뛰어든 이유가 무엇일까?

매일 아침 5시면 일어나 경매장으로 향한다는 그는 아직은 아침잠이 고플 20대이지만 멸치를 향한 열정이 가득한 그에겐 피곤함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경매장에 도착하면 박스 안에 들어가 있는 멸치들을 하나하나 살피는 일로 시작한다. 좋은 상품의 멸치를 고객들에게 전해 드리려면 색깔부터 건조, 향취, 맛, 모양까지 모두 다 살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갓 시작한 강동균씨는 남들보다 더 많이 봐야 하고 공부 해야 하기에 5시에 일어나 경매장에 나선다. 그는 그 시간 마저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최상의 상품을 찾기 위해 멸치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그가 이렇게 사업에 뛰어 들 수 있었던 건 이 업에서 25년 가량 멸치 베테랑으로 계신 아버지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처음 멸치 중매인으로 시작하셨을 땐 아무것도 모른체 맨땅에 헤딩 하다시피 이 일에 뛰어 드셨어요. 그러면서 겪었을 많은 어려움과 파란만장한 시간들, 그리고 그 끝에 알게된 노하우들, 그 귀중한 정보들은 제가 아들이라고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노력하고 공부하고 깨우쳤을 때 비로소 제께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버지 덕에 더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에 부끄럽지 않게 제가 더 노력해야죠”

강동균 실장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명절 때마다 박스를 접었다고 한다. 그런 아들이 기특했는지 그의 아버지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게 좋아 어릴적부터 아버지와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일을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어렸을 때 부터인것 같아요. 명절만 되면 많은 선물세트로 일손이 부족했어요. 어린 저라도 도와야 겠다는 생각에 아버지와 밤낮으로 일했고 비록 박스 접이지만 우리 가족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에 항상 뿌듯 했었어요. 작은 고사리같은 손으로 열심히 박스를 접는 제가 기특했는지 아버지는 항상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그게 좋아 더 열심히 했죠. 밤늦게 작업을 끝내고 돌아 가는 길에 치킨을 시켜 가족끼리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게 좋았습니다. 그때의 추억이 이 일을 하고 싶다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의 몸에 베인 선한 느낌들은 화목한 가정에서 잘 자랐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고등학생때의 웃픈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준다며 서글서글하게 웃어 보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장래희망조사 당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당차게 거상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어요. 순간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선생님의 짧은 한마디 “엎어!” 그때는 엎드려 뻗친 상태에서 매를 맞을 때 까지도 무엇을 잘 못 했는지 모르고 맞았어요. 그땐 선생님 말씀이 절대적이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또는 ‘장사를 하고 싶습니다’ 같이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할 걸 그랬어요."

멸치의 향취를 통해 품질을 체크하고 있다.

오전에는 위판장 물건을 살피고 사장인 아버지를 보좌해 경매를 돕는다. 오후에는 온라인 판매 준비부터 거래처 확보와 미팅, 멸치 상품화를 위해 상품제작 등 하루종일 멸치 생각으로 가득한 그도 처음부터 가업을 이은건 아니었다.

멸치 사업에 뛰어 들기 전 그는 여러 번의 시행 착오를 거친 상태였다. 처음에는 요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가족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요리학과를 갔다 되돌아 오기도 했었고, 빠른 취업을 원해 당장 할 수 있었던 병원에 들어가 원무과부터 수술실까지 병원에서 다양한 일을 했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도전과 개척보다는 반복되는 일상의 회의감을 견디다 못해 잘 다니던 병원을 나와 개인 사업을 준비해 보기도 하였다. 물론 준비없이 혈기로 시작한 사업이 잘 될리 없었고 결국 일하던 병원으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채워지지 않는 갈망에 가만있지 못했던 그는 본래의 직장생활에 이어 판매직 부업, 주말은 오전, 오후아르바이트까지 하며 사업의 기본기를 다졌다. 이러한 노력하는 모습에 강동균씨의 아버지께서 함께 해보자며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다고 한다.

그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밝혔다. 학창시절에는 공부를 잘 못했고, 그렇다고 다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도전의식과 실패를 해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는 성격 덕에 다시 도전하게 되었다고.

"요즘같이 취업이든 장사든 쉽지 않은 시기에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없었다면 저도 직장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건 내가 잘해서, 잘나서가 아닌 아버지께서 잘 일구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 걸 알기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제 주변만 둘러봐도 저보다 훨씬 똑똑한 분, 꼼꼼하신 분, 열심히 노력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끔 아버지 덕분에 성공했네가 아닌 아들 덕분에 아버지 사업이 꽃을 피웠네로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 '통영바다뜰' 브랜드를 상품화 시켜 전국 각지에 납품과 거래처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후에는 마른 멸치를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뻗어 나가 수출하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 등 한인타운이 많은 LA, 호주, 동남아권을 넘어 5000만의 고객층이 아닌 60억 전세계인을 상대로 사업을 펼쳐 보고 싶다는 통영 청년의 강동균 실장의 눈빛이 반짝였다.

꿈꾸지 않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그의 꿈을 통해 통영의 미래를 보았다. 멸치로 꿈꾸는 통영 바다뜰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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